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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말씀

침례에 대한 가르침을 올바르게 실천하는 하나님의교회

by 미라클피니시 2017. 5. 12.

침례에 대한 가르침을 올바르게 실천하는 하나님의교회

 

침례란 잠길 침 자를 써서 온 몸을 물에 적시는 예식을 말합니다.

 

오늘날에는 많은 교회에서는 세례라고 하는 예식을 행하고 있습니다.

 

 

세례라는 것은 과거에 몸을 다 적실 만한 물이 없거나 온몸을 물에

 

적실 수 없는 환자에게 침례를 주어야 하는 경우에 약간의 물을 뿌리는 것으로

 

대체했던 일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러한 약식 침례는 불가피한 상황에서만 허용되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잘못

 

일반화되었습니다.

 

 

침례라는 단어에서 잠길 침자를 사용하는 이유는 침례를 뜻하는 밥티스마라는 헬라어가

 

적시다, 잠그다라는 뜻을 지닌 밥티조에서 파생된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온 몸을 다 적시는 예식이라는 것이 이미 원어 자체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뜻 그대로 침례라고 해야 올바른 명칭입니다.

 

 

 

마태복음 3장 16절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예수님께서 침례 이후에 물에서 올라 오셨다는 것은 곧 온몸을 물에 적셔서 행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8장 38~39절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주고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흔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빌립이 내시에게 침례를 행했을 때도 분명 침례 이후 물에서 올라갈새라고 하였으니 분명

 

침례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세례가 아니라는 점이 증명됩니다.

 

 

 

 

 

 

 

 

이처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행하는 세례는 하나님의 규례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침례를 행하는 하나님의교회에서의 가르침이 올바른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침례를 행하는 시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침례는 구원의 약속이 담긴 귀한 진리입니다.

 

죄인으로 기록되어 있고 결국은 지옥의 형벌과 죽음의 결과를 앞두고 있는 이 세상의 사람들에게

 

죄사함의 약속과 구원의 약속을 주시는 것이 침례입니다.

 

그러므로 침례는 미룰 수 없는 중요한 의식이며 하나님을 깨닫고 신앙생활을 하고자 한다면

 

즉시 침례를 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기독교인들은 짧게는 1~2주, 아니면 한달 혹은 6개월 혹은 1년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고자 하여도 학습세례라고 하여서 정해진 교육 내용을 마쳐야 세례를 주는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성경적인 가르침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선시 하는 것은 우리의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잠언 27장 1절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모든 사람들이 말씀과 같이 앞날을 알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바로 앞에 좋은 일이 있을지

 

아니면 안좋은 일이 있을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사는 우리에게 구원의 약속이 있는 침례를 어떻게 미룰 수 있겠습니까?

 

만약 하나님을 믿게되었으나 침례를 미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침례를 받기까지 안좋은 일이 발생해 다시는 받을 기회가 없게되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구원은 누가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천국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고 구원의 약속이 있는 침례는 하나님을

 

깨달은 즉시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서도 그러한 내용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2장 16~21절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부자가 많은 재물을 모으고 행복한 앞날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부자의 앞날은 생각과 달리 당장 그날밤에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부자와 같이 앞날을 알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구원의 약속이 있는 침례라는 예식을 우리는 반드시 미루지 않고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2천년 전에는 어떠했을까요?

 

예수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들이 있었고 또한 그 가르침을 그대로 순종했던 초대교회

 

신앙도 이와 같았습니다. 침례는 하나님을 깨달은 즉시 미루지 않고 행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8장 35~38절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없음)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주고

 

 

 

빌립이 에디오피아 여왕의 모든 국고를 맡고 있는 큰 권세를 가진 내시에게 말씀을 전하였고

 

내시는 예수님을 깨닫고 침례를 받고자 하였습니다.

 

그때 빌립의 행동이 어떠했습니까?

 

1~2주 정도는 정해진 모든 공부를 마치고 침례를 주었습니까? 아닙니다.

 

즉시 침례를 행했습니다.

 

빌립과 내시가 어떤 사이였을까요?

 

이제 막 처음 만난 사이였습니다. 그리고 침례를 받은 장소는 길가였습니다.

 

여왕의 국고를 맡고 있으니 그 권세가 대단했을 것입니다. 사는 집도 좋았을 것이고 많은 하인도

 

있었을 것입니다. 조금더 기다렸다가 집에서 침례를 행했으면 더 편하고 좋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처음 만난 하나님의 선지자에게 길가에서 침례를 받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침례는 미룰 수 없는 중요하고 긴급한 의식이며 침례를 즉시 행하는 것이 성경적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도행전 10장 47~48절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고넬료라고 하는 이탈리아 군대의 백부장에게 베드로가 침례를 행하는 장면입니다.

 

베드로도 고넬료를 처음 만났고 그리고 베드로의 입장에서는 고넬료는 외국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처음 만난 고넬료가 예수님을 믿고자 하였을 때 미루지 않고 즉시로 침례를 행하였습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도행전 16장 31~33절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은 후

 

 

 

바울이 간수에게 침례를 행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 보는 간수에게 밤 중에 침례를 행했던 것입니다.

 

2천년 전의 밤은 오늘날과 다르게 잘 안보이고 많이 불편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즉시 침례를 행한 것은 침례를 즉시 행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6장 14~15절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

 

 

 

루디아라 하는 자주장사에게도 즉시 침례를 행했습니다.

 

이처럼 사도들의 행적 가운데에는 침례를 미루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을 알려주고 즉시 침례를 행했습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침례를 행했습니다.

 

 

오늘날의 기독교의 세례라는 것과 성경에서 증거하는 침례라는 것은 의식 자체도 다를 뿐더러

 

행하는 가르침 또한 달랐던 것입니다.

 

 

이번에는 재침례에 대한 가르침도 확인해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9장 3~5절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말씀에서 침례 요한의 침례를 받았던 사람들이 두번째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다시

 

받고 있습니다.

 

요한은 예언의 인물이긴 하지만 구원자는 아니었습니다.

 

침례는 구원자의 이름으로 받아야 하고 진리가 있는 교회에서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구원의 약속이 없으므로 의미가 없습니다.

 

 

오늘날도 다르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예수님께서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고 하였고 또한

 

새언약 진리를 세워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침례를 행하는 하나님의교회에서 받는 침례가 성경대로 행하는

 

올바른 침례이고 구원의 약속이 있는 것입니다.

 

비록 침례를 받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교회에서 올바르게 다시 침례를 받아야 하고 세례를 받았다면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 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

 

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침례는 죄 사함과 성령을 선물로 받는 약속이 담겨져 있습니다.

 

죄 사함과 성령을 선물로 받는 사람이 구원을 받는 사람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그러나 침례를 받지 않으면 죄 사함이 없으므로 그 죄값을 치르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문제 속에서 하늘에서 지었던 사망에 해당하는 모든 죄를 치르게 됨으로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침례는 죄 가운데서 사망의 종노릇하며 지옥의 형벌을 기다리던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며 지난 날의 죄악된 모습을 버리고 천국을 향해 변화된

 

삶을 살겠다는 약속이 담긴 의식입니다.

 

천국을 향한 믿음 생활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우리가 침례를 받고 구원을 받기를 바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침례에 대한 가르침을 주실 때 구원부터 받으라고 하시며 즉시 침례를 행하게 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그토록 측량할 수 없는 영광을 버리시며 죽기까지 희생하셨지만 그 희생과 사랑을 알기 이전에

 

먼저는 구원을 받도록 하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이 침례를 즉시 행하게 하신 규례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마음을 깨닫고 아직까지 올바른 침례를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교회에서

 

성부 여호와 하나님, 성자 예수 님, 성령 안상홍 님의 이름으로 세례가 아닌 밥티스마라고 하는 침례를

 

받을 수 있도록 알려주는 일에 힘써야겠습니다.